[식당 리뷰] 고기압엔 고기 앞으로, 저기압엔 막걸리 앞으로 <서촌주막> > 서비스리뷰

목로주점의 목로(木壚)는 술잔을 놓기 위해 쓰는 좁고 기다란 널빤지로, 여기에 상을 차려서 술을 파는 집을 말한다. 단어의 의미가 뭔가 좀 있어 보이긴 하지만 동네 어귀에 있던 싸구려 술집이 목로주점이다. 월급날이면 싸구려 술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연말에 적금을 타서 낙타를 사고 사막엘 가자는 꿈을 꿔보는 그런 곳이다.

이런 술집에서는 으레 소주보다는 막걸리가 더 어울려 보인다. 그것도 시중에서 흔하게 파는 장수 막걸리 같은 것도 아닌, 한 병에 몇 만원씩이나 하는 해창 막걸리도 아닌, 그 가게에서 직접 만든, 커다란 뚝배기에 담긴 시금털털한 동동주 같은 술 말이다.

서울 서촌에 그런 술집이 있다. 통인시장 초입에 있는 <서촌주막>이 딱 그런 곳이다. 통인시장 간판을 지나 20여미터쯤 들어가면 오른편에 서촌주막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건물로 치면 효자아파트 지하상가에 있다. 입구에 노벨상을 수상한 한강 시인의 현수막이 붙어 있다. 주인장에게 물어보니 “우리 가게엔 한 번인가 와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같은 서촌의 주민이라서 걸어놨다”고.

두 사람이 걸어 내려가기엔 좁은 계단을 통과하면 제법 널찍한 지하 공간이 나온다. 벽엔 온통 다녀간 사람들의 사인으로 가득하다. 가끔 유명인들 사인도 눈에 띈다. 파티션이 쳐진 오른쪽엔 약간 공연장 같은 느낌이 나고, 왼편엔 식당 같은 느낌이 난다. 실제로 두 세평 정도의 공간에 무대가 놓여 있고 양 옆으로 기타, 장구 등의 악기도 있다. 물론 노래방 기기도 있다. 술 한잔 하고 누구나 여기서 노래를 할 수 있다. 주 목적은 여기서 매주 금요일 라이브 공연이 진행된다.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본다. 1980년대 대학가 앞 술집에서나 볼법한, 종이에 코팅을 한 다음 원형 클립으로 묶은 그런 메뉴판이다(최근에 업그레이드됐다). 안주는 한때 유행했던 전통주점에서 흔히 보던 전류와 포장마차에서 어울리는 메뉴들이다. 눈여겨볼 메뉴는 막걸리다. 막걸리 수가 어마하다. 무려 80가지의 막걸리가 있단다. 이 가운데 주인장이 추천하는 건 이 주막에서 직접 만든다는 서촌누룽지둥둥막걸리다.

서촌누룽지둥둥막걸리를 주문하면 까만 뚝배기 그릇에 막걸리가 담겨 나온다. 막걸리 속에 가끔 까만 알갱이들이 보이는데 불순물은 아니고 누룽지 탄 거라고 하니 안심하란다. 막걸리 색깔은 약간 불그스름한 분홍빛이 감돈다. 일반 막걸리보다 시큼함이나 청량감은 덜하다. 탄산도 많지 않다. 누룽지를 원료로 만들어서 그런지 숭늉 마실 때 같은 구수한 맛이 있다. 가격은 저렴하지 않다. 한 뚝배기에 1만원이다.

안주 중에서는 당연히 전류가 막걸리에 가장 어울리지만 주인장의 추천으로 가끔 홍어회를 먹는다. 이 곳의 홍어회는 국산만 쓴다. 칠레산 같은 외산은 안쓴단다. 그래서 싱싱한 탓에 해체하면서 나오는 애를 서비스로 선뜻 내준다. 애는 원래 다른 데서는 못 먹는데 이 곳의 애는 우유 맛이 난다. 홍어는 색깔부터 남다른데 아주 삭힌 홍어가 아니라서 톡 쏘는 맛은 덜한데 아주 신선하다. 홍어회를 주문하면 홍어라면을 무료로 주는데 꼭 먹어보길 권한다.

사실 술은 소주를 더 많이 마시지만 가끔 막걸리가 땡길 때가 있다. 기분 처질 때다. 고기압엔 고기 앞으로, 저기압엔 막걸리 앞으로. 그래 그렇게 마주 앉아서 그래 그렇게 술잔을 부딪쳐 보는 것도 인생 사는 맛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