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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리뷰] 좌충우돌 유럽 가족여행기⑬ 프랑스 왕실의 몰락을 가져온 건축물 ‘베르사유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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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타임스=김우선 기자] 우리가 베르사유 궁전에 간 날은 공교롭게도 열흘 동안의 여행 기간 동안 거의 유일하게 비가 내린 날이다. 그것도 폭우 수준으로 많이 내렸다. 아침에 호텔을 나설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RER C라인 철도를 타고 한참을(1시간여) 가는 동안 빗줄기가 강해지기 시작했다.

 

베르사유 궁전

 

 

호텔에서부터 전철을 타서 중간에 갈아타는 과정이 두 번 있었지만 다행히도 헷갈리지 않고(가는 방향과 반대로 타서 되돌아오는 과정을 두 번 하긴 했다) 탈 수 있었다. 베르사유행 기차는 일반 전철이 아닌 2층 열차다. 참고로 유럽엔 땅덩어리가 넓어서인지 2층 열차가 엄청나게 많다. 실내도 일반 전철보다 매우 넓다.

 

베르사유 궁전은 파리시가 아닌 베르사유시에 있다. 시를 벗어나 외곽의 다른 시까지 가야 하기 때문에 멀다. Versailles Château역이 종착역인데 여기서 내리면 된다. 역에 내리니 빗줄기가 굵어졌다. 여기서부터 베르사유 궁전까지 거리가 1km인데 15분 정도 걸어가야 한다.

 

기마상 뒤로 베르사유 궁전이 보인다.

 

베르사유 궁전의 조감도

 

 

비가 오지 않았으면 좋았을텐데 아침부터 몸이 무겁다. 한참을 걷다 보니 기마상 동상이 보이고, 그 뒤로 황금칠을 한 것 같은 지붕의 궁전이 저 멀리 보인다. 말을 탄 동상은 절대권력을 휘둘렀던 루이 14세의 기마상이다.

 

베르사유 궁전은 바로크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다. 태양왕으로 일컬어지던 루이14세의 강력한 권력을 상징하는 건축물이기도 하다. 루이13세 때는 사냥용 별장으로 쓰였다는데 루이14세가 한 번 방문한 이후로 마음에 들어 확장 공사를 시작해 1682년 베르사유 궁전으로 거처를 옮겼는데 이후 루이16세까지 왕실 가족들이 여기에 거주했다. 궁전 건축을 위해 매년 3만 명이 넘는 인부가 동원되었단다.

 

철문에서 화려함이 묻어난다.

 

베르사유 궁전 앞 광장

 

 

궁전으로 가는 길에는 비가 억수로 내리는데도 물건팔이가 성업 중이다. 몇몇 흑인들이 엄브렐라를 외치며 우산을 팔고 있다. 금빛으로 칠한 창살문을 통과하면 광장이 나오는데 벌써 줄이 몇 백미터는 늘어서 있다. 줄은 2개다. 하나는 티켓을 구입하는 줄, 하나는 우리처럼 뮤지엄 패스나 입장권을 미리 예약한 사람들의 줄이다. 그나마 우리 줄이 좀 짧다.

 

여느 관광지와 마찬가지로 가방은 엑스레이 검색대를 통과해야 한다. 십여 분 줄을 섰을까, 드디어 궁전 내부로 들어갔다. 1층의 다소 형식적인(?) 공간을 거쳐 2층에 다다르면 베르사유 궁전의 진면목이 나타난다. 여기에 왕과 왕비의 방, 거울의 방, 비너스의 방 등 호화로움의 극치를 볼 수 있다.

 

왕실 예배당

 

예베당 천장의 화려함궁전으로 들어가는 복도

 

루이14세 초상화

 


 

나폴레옹 대관식 그림과 천장의 화려한 그림

 

베르사유 궁전에서 가장 화려한 곳은 거울의 방이다. 전체 길이 73m, 너비 10.4m, 높이 13m로 정원을 향해 17개의 창문이 있으며, 반대편 벽에는 17개의 거울이 배열되어 있다. 방 전체에는 357개의 거일이 배치되어 있다고 한다. 당시 거울의 제조법은 베네치아에서 독점하고 있었는데 베네치아의 거울 장인 2명이 프랑스로 망명하면서 베르사유 궁전의 모든 거울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거울의 방 천장을 보면 온통 금빛으로 번쩍인다. 실제로 순금으로 칠했다고 한다. 주로 왕족의 결혼이나 외국 사신의 접견 등을 행하는 공간으로 쓰였는데 1차 세계 대전 후 연합국과 독일 사이에 체결된 평화협정인 베르사유 조약이 맺어진 공간으로도 유명하다.

 

화려한 샹들리에

 

거울의 방

 

전부 금이다.

 

 

원래 베르사유 궁전은 프랑스의 랜드마크 같은 거대한 건축물로 왕의 부를 과시하고 왕권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또 귀족들을 베르사유에 집합시켜서 왕 앞에 줄서기를 하도록 강요한 공간이기도 했다.

 

거울의 방 남쪽에 왕비가 거처하던 평화의 방도 호화스럽기 그지없다. 헤라클레스의 방을 통해 국왕이 있는 전쟁의 방과 거울의 방에 들어가서 여기와 연결된 왕의 침실과 왕비의 침실을 구경하는 게 베르사유 궁전의 가장 핵심 관람 코스다. 왕과 왕비의 휘황찬란한 침실을 구경하면서 과연 여기서 자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왕의 침실

 

왕비의 침실

 

 

양념 같은 얘길 잠깐 하자면, 베르사유 궁전에는 아예 화장실이 없어서 프랑스 귀족들은 정원 아무데서나 똥을 쌌고 그걸 피해다니기 위해 하이힐이 생겼다는 썰이 사실처럼 회자되는데 틀린 얘기라고 한다. 원래는 하수관과 지하 배수로 등을 갖춘 변소와 욕실 등이 있었는데 프랑스 혁명 이후 궁전을 박물관 용도로 개조하기 시작하면서 다 없애고 과시용 공간만 남게 되어 잘못된 루머가 퍼진 거라고 한다.

 

베르사유 궁전은 엄청나게 넓은 정원으로 유명하다. 축구장의 30배 규모다. 그날따라 비가 너무 오는 관계로 야외 정원은 아쉽게도 패스해야 했다. 보통 베르사유 궁전을 관광할 때 하루 코스로 잡는다고 하는데 궁전 내부 관람을 하고 정원으로 나오면 점심 시간이 된다. 궁전 내부에는 식사를 할 공간이 없기에(보진 못했지만 있긴 한데 엄청 비싸다고)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거나 빵이나 샌드위치를 싸와서 때운다고 하는데 우린 비로 인해 정원을 패스하는 바람에 오전에 궁전 관람을 마무리했다.

 

궁전 앞 작은 정원

 

궁전에서 바라본 정원과 대운하

 

정원쪽에서 바라본 궁전

 

 

정원에 직접 가보진 못하고 멀찍이 보기만 했는데 루노트르(André Le Nôtre)가 설계했다는 베르사유 정원은 엄격한 대칭과 수로, 조각상, 화려한 분수쇼를 구경할 수 있다고 한다. 날씨가 좋으면 도시락을 싸와서 대운하를 바라보면서 피크닉을 즐기기에 좋다고. 또 정원은 너무 넓어서 입구의 자전거를 빌려서 타거나(시간당 10유로) 4인승 전동 카트, 정원 내 셔틀 열차, 대운하 내에서 보트를 대여해 보기를 권한다. 10km 정도는 기본으로 걸어야 한다.

 

베르사유 궁전을 얘기할 때 루이16세와 그의 부인인 마리 앙뚜아네트 왕비의 몰락을 빼놓을 수 없다. 루이16세는 1789년 프랑스 혁명 때 베르사유 궁전으로 난입한 파리 시민들에게 포위된 채 궁전을 쫓겨났고 파리를 빠져나와 다른 나라로 도망을 시도하다 붙잡혀 단두대에서 처형당했다. 헌법 위반과 국가 재정의 낭비, 시민에 대한 무력 사용이 죄목이었다. 프랑스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단두대에서 처형당한 비운의 왕이다.

 

그의 부인 마리 앙투아네트 역시 사치스러운 생활로 프랑스의 국가 재정위기를 초래했다. 그녀에 대한 국민들의 증오심은 왕정을 타도시킨 프랑스 혁명의 촉진제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마리 앙뚜아네트 역시 감옥 생활을 하다가 루이16세 처형 9개월 뒤 혁명재판소에서 재판을 받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베르사유 궁전은 왕과 왕족들을 위해 당시 백성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제군주나 폭압적인 왕정으로 인한 피해는 항상 백성의 몫이었다. 그렇게 해서 폭발하면 민란이 일어나고 혁명이 일어나는 게 역사임을 보여준다.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했던가. 지금 우리나라의 역사는 프랑스 혁명 당시를 떠올리게 한다.

 


<ansonny@review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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