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리뷰] 두렵지만 가야 했던 머나먼 길…조선통신사 특별전 《마음의 사귐, 여운이 물결처럼》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 특별전...통신사 관련 유물 역대 최대 규모로 두 달간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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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의 규모는 300~500명 수준. 한양에서 출발해 부산, 쓰시마, 시모노세키, 오사카, 교토를 거쳐 에도, 닛코까지 이르는 긴 여정으로 당시는 전부 도보로 이동했으니 짧게는 5개월에서 길게는 10개월이 걸렸다.
임진왜란 때 수십만 명이 죽임을 당했는데 조선통신사를 맡아 떠나는 임무는 엄청난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당시 조선통신사 일행으로 떠나는 김지남은 이렇게 썼다고 한다. “어머님께 가서 작별을 고했다. 어머님께서는 눈물을 머금고 차마 말을 잇지 못하신다. 나 역시 눈물이 흐르고 목이 메어 슬픔을 억제하기 어렵다. 아이들을 돌아보니, 큰아이는 미리 한강가로 나갔고, 다른 아이들은 피해 숨어서 슬피 우느라 불러도 와서 보지 않는다.”
조선통신사의 길은 살아 돌아올지 알 수 없는 두려움의 길이었지만 눈물을 머금고 가야만 했던 길이었다.
유물로 보는 조선통신사의 역사
조선시대 일본에 파견됐던 외교사절단 ‘통신사’의 유물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특별전 《마음의 사귐, 여운이 물결처럼》이 4월 25일부터 6월 29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다.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해 마련됐다. 이번 전시는 통신사 유물 전시 중 역대 최대 규모로, 111건 128점의 유물이 소개된다.
전시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24건, 한·일 양국의 지정문화재 12건 등 문화사적으로 귀중한 유물이 다수 포함돼 있다. 특히 재일동포 사학자 故 신기수 선생의 ‘신기수 컬렉션’(오사카역사박물관 소장)과 에도도쿄박물관, 국사편찬위원회가 특별협력 기관으로 참여하며 깊이를 더했다.
통신사는 조선이 일본 막부의 요청에 따라 파견한 공식 외교사절로, 외교와 문화의 가교 역할을 했다. 전시는 ‘국가에서 개인으로, 외교에서 문화로’ 이어진 통신사의 여정을 따라, 신뢰와 교류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긴다. 1,156㎡ 규모의 전시장은 박물관 개관 이래 최대 면적이다.
유물은 1·2차로 나뉘어 교체 전시되며, 전문가들 사이에서만 알려졌던 진귀한 유물들이 일반에 처음 공개된다. 대표작으로는 통신사 그림 에마(美具久留御魂神社), 조선 사절의 정장을 묘사한 <신미통신사정장복식도권>, 통신정사 조엄의 글, 시인 이언진의 시문 <송목관시독> 등이 있다.
전시는 3부 구성으로 펼쳐진다. 제1부는 통신사의 외교적 역할을, 제2부는 서울에서 에도까지의 여정을, 제3부는 문화적 교류의 흔적을 조명한다. 통신사 일행이 일본에서 받은 환대, 일본인의 시선으로 본 사절단 행렬, 바다를 건너 오간 시문과 공예품 등 다채로운 스토리가 담긴다.
몰입형 영상 3편을 통해 당시 여정과 감정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어린이와 가족 단위 관람객을 위한 체험형 콘텐츠도 운영된다. 개막일에는 경희궁 숭정전에서의 삼사 임명식과 행렬 재현, 5월에는 국제 학술 심포지엄 등 다양한 부대 행사도 예정돼 있다.
서울역사박물관 최병구 관장은 “이번 전시는 단순한 유물 전시를 넘어, 수백 년간 이어진 신뢰와 문화교류의 정수를 담고 있다”며 “역사 속 ‘마음의 사귐’을 현재로 이어보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조선통신사, 문화로 흐른 외교의 유산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는 《마음의 사귐, 여운이 물결처럼》 특별전은 단순히 조선통신사의 유물을 모아 놓은 자리가 아니다. 이 전시는 ‘외교 사절’이라는 공식 임무를 넘어, 조선과 일본이 어떻게 신의와 문화로 오랜 시간을 이어왔는지를 깊이 있게 풀어낸다. 전시는 총 3부 구성으로, 조선통신사의 의미와 여정을 다층적으로 조명한다.
1부: ‘신의’로 연 외교, 통신사의 재발견
조선통신사는 단순한 외교 대표단이 아니었다. 임진왜란이라는 단절의 시간을 극복하고, 평화를 복원한 외교 시스템이었다. 이번 전시는 사명대사의 유묵, 포로 강항의 저작 『수은간양록』 등 전란 이후의 고뇌와 국교 재개의 역사적 배경을 보여준다. 특히, ‘전후의 평화 외교’를 상징하는 『경칠송해사록』은, 조선이 일본과의 외교에서 자존을 지키며 신의를 회복하려 했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당시 조선은 일본의 수교 요청을 실용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철저한 조건을 전제로 했다. 외교의 갈등과 결단을 ‘길을 찾아 나서는 관료들’의 영상 서사로 재현한 전시 콘텐츠는, 이들이 짊어진 시대적 무게를 생생히 전달한다.
2부: 한양에서 에도까지, 평화가 흐른 길
통신사의 여정은 왕복 4,600km, 수개월에 걸친 대장정이었다. 이 여정은 그 자체로 문화와 신뢰의 상징이었다. 조선통신사 조엄이 출발 전 왕에게 올린 비장한 결의의 글, 사행록인 『조제곡해사일기』 등은 외교 사절의 각오를 보여준다.
전시에서는 행렬도와 사행기록, 그리고 30장면으로 구성된 <사로승구도권>, 일본 민중이 통신사를 바라본 시선을 담은 <조선통신사등성행렬도권> 등을 통해, 양국 시민들의 상호 인식을 살핀다. ‘글을 못 쓰는 사람이 없고’, ‘맛있는 음식에 살이 찔 정도’라는 기록은 이 만남이 단순한 외교를 넘어 따뜻한 문화 접촉이었음을 증명한다.
에도에서의 국서 교환 장면을 그린 <통신사환대도병풍>, 정장 복식을 정밀하게 묘사한 <신미통신사정장복식도권> 등은 통신사가 수행한 의례의 정치적 무게를 다시금 느끼게 한다.
3부: 문화로 이어진 교류, 오늘의 의미
외교의 여운은 예술과 일상으로 확장되었다. 필담과 창화, 도자기 주문, 서화 교류는 통신사의 또 다른 역할이었다. 특히 1763년 계미사행은 문화 교류의 절정기였다. 이언진이 바다 위에서 쓴 시문 <송목관시독>, 남옥이 남긴 시집 『일관창수』, 이덕무의 『청령국지』 등은 사행이 남긴 문학적 유산이다.
일본 민중에게도 통신사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에도의 축제에 등장한 조선 사절단 행렬, 통신사 이미지가 담긴 에마, 인롱, 접시, 촛대 디자인은 문화를 매개로 한 이해와 환대의 증표다. 특히 일본 미구쿠루미타마신사의 에마는 통신사 행렬을 그린 가장 오래된 사례로, 이번 전시에서 최초로 국내 공개된다.
또한 이번 전시는 1970년대부터 통신사 관련 자료를 수집한 재일동포 사학자 신기수의 노력도 조명한다. 그의 말처럼 “전쟁보다 사이 좋았던 시간이 더 많았던 시대”를 돌아보며, 전시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밑거름이 된 민간의 헌신까지 담아낸다.
<ansonny@review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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